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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놓아 울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자

나는 처음 진단 받았을 때 가족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아마도 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정신줄 놓았을 때 다른 가족들의 반응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진단 받고 어느 날 파주에 있는 보광사에 혼자 갔었다. 이 사찰은 그동안 내가 가보고 싶었던 유명한 사찰이었다. 예쁘기는 하지만 비교적 작은 절이라 순례객들이 없었다. 보통 대웅전을 지키는 '법당보살'도 다른 신도조차도 없었다. 대웅전 바닥에 업드려 정말 말그대로 엉엉 울었다.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고 집에서, 가족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곳에서 울면 앞으로 내 생활이 울음으로 계속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는 절에 가서 울었다. 다른 신도들이 법당에 있으면 조용히 ..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역사를 공부하거나 산행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기억되고자하는 욕망'은 정말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일을 한 사람들은 물론 기억해 줄만하다. 그러나 그 몇 몇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잊혀진다. 그래서 기억되려고 족보를 남기고 묘비명을 세운다. 그동안 내가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역시 돌에다 이름을 새기는 것이 제일 오래 가는 것 같다. 아니면 유명한 책을 쓰던지. 책을 있다보면 작가가들의 이름을 남기고자하는 욕망은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 이름 석자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투병 생활 중에 느낀 것은 나를 가장 잘 기억할 아이들과 남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그들은 그들이 생존해..

버리기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인간의 삶에서 예상대로 일어나는 일은 '죽음'뿐이다. 암4기 환자는 남들보다 좀 일찍 죽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20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이 암환자에게는 1년 안에 일어난다. 한편으로는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투병하겠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진단받고 처음 한 일은 버리기였다. 나한테는 소중했지만 내가 죽으면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그냥 '짐(쓰레기)'이 될 만한 것들은 다 버렸다. 제일 먼저 책부터 버렸다. 내가 가진 책들은 나에게는 소중했지만 내 아이들은 읽지도 않을 것이다. 다 버렸다. 요즘에는 버릴 책이 많으면 전화하면 수거해 가시는 분도 있다. 그 중에 값어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