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진단 받았을 때 가족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아마도 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정신줄 놓았을 때 다른 가족들의 반응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진단 받고 어느 날 파주에 있는 보광사에 혼자 갔었다.
이 사찰은 그동안 내가 가보고 싶었던 유명한 사찰이었다.
예쁘기는 하지만 비교적 작은 절이라 순례객들이 없었다. 보통 대웅전을 지키는 '법당보살'도 다른 신도조차도 없었다.
대웅전 바닥에 업드려 정말 말그대로 엉엉 울었다.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고 집에서, 가족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곳에서 울면 앞으로 내 생활이 울음으로 계속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는 절에 가서 울었다. 다른 신도들이 법당에 있으면 조용히 엎드려서 울면 된다.
원래 절에는 고통 받는 분들이 오기 때문에 법당에서 큰 소리만 내지 않으면 울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또 한명의 고통 받는 중생이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법당 보살들도 우는 낯선 신도에게 말도 걸지 않는다. 그냥 울게 놔 둔다. 내가 자주 다니는 절에 가서 울면 나를 알아보는 다른 신도 있을지 모르니 울려고 마음 먹을 때는 낯선 절에 가서 운다.
원래 종교의 기능 중의 하나는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이다. 자신의 고통, 막힌 것을 분출하는 곳이 종교 시설이다.
연로하신 할머니들 중에는 자신 감정의 쓰레기를 여자 가족들에게 분출하시는 분들이 많다. 딸, 며느리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이다.
본인은 자신의 고통을 해소해서 기분이 풀리지만 듣는 사람들은 정말 괴롭다. 더구나 그 이야기가 자신과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자신의 고통 또는 업을 해소해야 정신적으로 편안해 지는 것 같다.
스스로 뒤돌아 보고 해결할 것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족들에게 했다가는 가족들을 너무 고문하는 것일수도 있다. 나는 그런 정신적인 해소는 전문 상담사나 종교인에게 하는 것이 가족들을 해치치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타인이어서 나와 과거에 얽히지 않았고 그런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해도 스스로 상처받지 않는 훈련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암환자가 되면 갑자기 80세 넘은 노인들의 정신 상태가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저 밑바닥에서 올라 온다. 아무리 타인들이 보기에 무난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누구나 '정신의 꼬임'은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잘 풀고 가야 투병 생활도 잘 할 수 있다.
그 꼬임을 푸는 첫번째 관문이 대성통곡인 것 같다.
이 대성통곡을 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아닌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절, 교회, 산, 등등
일단 대성통곡으로 그 동안 억제되었던 감정의 둑을 터뜨리고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는 것이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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