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병 기간동안 두번의 간염, 두번의 폐렴, 한번의 패혈증을 앓았다.
폐렴과 패혈증은 암환자, 특히 폐암환자에게는 치명적인데 다행히 우리나라 병원의 높은 의료 수준 때문에 겨우 살아 남았다. 이 병들로 인해 입원하면서 이번에 과연 저 문으로 살아나올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암환자들은 이런 병에 걸리면 괜찮다가도 순식간에 나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암병동에 입원하면 며칠에 한번씩 큰 울음 소리가 들리곤 한다. 중환자실로 옮길 시간조차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나 같은 폐암환자는 코로나에 걸리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뉴스에 나오는 '기저 질환 있는 환자'의 최상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1. 일단 사람 많은 곳에는 가급적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꼭 만져야했던 곳들을 만지지 않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 1층 로비 버튼, 공중 화장실 손잡이, 변기 버튼, 에스켈레이터 손잡이, 편의점, 은행 문의 손잡이, 택시문 손잡이, 버스 손잡이)
가급적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혼자 탄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쓰기는 했지만 줄창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제발 엘리베이터를 탄 짧은 순간 만이라도 입 좀 다물고 있었으면 좋겠다.
에스켈레이터를 탈 때는 손잡이를 잡지 않는다. 단,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리에 힘주고 있는다.
엘리베이터 버튼, 아파트 1층 로비 출입문등 모든 사람들이 꼭 눌러야 되는 버튼을 누를 때는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고 주먹 쥐고 손가락 마디로 누른 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손세정제로 닦는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예전 사스 때부터 가장 빈도가 높은 전염 매체이다. 물론 요즘에는 버튼 위에 항바이러스 비닐이 씌워져 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루고 나중에 그 손가락으로 무엇을 집어 먹거나 내 얼굴을 만질 확률이 높아진다. 주먹 쥐고 손가락 마디로 누르는 경우 그 부위를 내 입에 닿게 할 가능성이 낮다.
외부에서 화장실을 갈 때는 화장실 문 열고 변기 버튼 누르는 것까지 모두 휴지를 조금씩 뜯어서 그것으로 문 열고 버튼 누른다. 가장 황당한 경우가 화장실 쓰고 손 씻고 다시 화장실 문 손잡이(손잡이 있는 화장실인 경우)를 손으로 열고 나오는 것이다.
나올 때 손잡이 만지면 손 씻은 것이 무효가 된다. 따라서 손 씻기 전 손잡이를 열어 놓고 손 씻은 후 몸이나 발로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밖에 나가서는 나의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기 때문에 항상 무엇을 만질 때 오른손으로, 그것도 두번째 손가락을 많이 이용한다. 또 내 몸을 만질 때(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거나 눈을 비빌 때, 몸을 긁을 때)나 스마트폰을 만질 때 오른손의 두번째 손가락을 제일 많이 사용한다. 오른손의 두번째 손가락이 밖의 물건에 접촉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합병원, 특히 암병동에 가면 나처럼 비닐 장갑 끼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병원에 가서 진료 받거나 방사선 검사 받을 때도 한 손에는 장갑을 끼고 받는다. 가슴 방사선 찍을 때 꼭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손잡이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았을까? 손잡이를 잡고 밀고 들어가야하는 문도 수없이 많다. 밖에 나가서는 자주 손세정제로 닦는다.
그런데 표적치료제때문에 평소 피부가 민감한데 세정제를 자주 쓰면 피부가 더 나빠진다. 그래서 비닐 장갑을 많이 이용하는 것이 좋다.
2. 밖에 있는 시간이 긴 경우 아예 수술용 장갑을 처음부터 끼고 나간 다음 수시로 손세정제를 사용한다. 환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겨울에 손이 많이 갈라지는데 손세정제를 너무 많이 쓰면 손 끝 피부가 터지고 피가 난다. 수술용 장갑을 끼면 수시로 세정제를 닦아도 손피부를 보호할 수 있다. 또 수술용 장갑을 끼면 무의식적으로 내 얼굴을 만지거나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를 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수술용 장갑은 옥션, 쿠팡, 다이소에서 판다.
3. 어쩔 수 없이 나가야되는 경우 어떤 경우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즉 집 안 사람 이외의 사람들과는 차도 마시지 않고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
어쩔 수없이 밥을 밖에서 먹어야 하는 경우에는 일인용 칸막이가 있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먹는다. (예: 종합병원)
밥을 같이 먹는 행위도 위험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밥 먹을 때 말하지 않고 밥만 먹어야 하는 것이다.
밥을 같이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코로나 시대에는 사치이다. (그런데 친한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대화를 참기 힘들다. )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고 칸막이 없는 식당에 가야하는 경우 식사 시간을 지나서 가면 식당이 좀 한가하다. 배고프면 고구마 한 조각 먹고 버틴 후 직장인들의 식사 시간이 지난 뒤 식당에 간다.
겨울에는 힘들지만 날이 따뜻하면 포장해서 근처 공원에 앉아 혼자 먹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큰 건물 주위에 벤치가 있는 곳이 많고 작은 공원도 곳곳에 있다. 내가 갈 곳을 다음지도(스트리트뷰)에서 찾아서 근처에 벤치에 앉아 밥 먹을 곳이 있는지 미리 알아 놓는 것도 좋다.
4. 코로나 이후로 나는 버스나 지하철등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다.
잘 나가지도 않지만 (걷기는 걸어서 가는 아파트 단지, 동네 공원이나 뒷산을 간다.) 꼭 가야한 곳(병원)에 갈 때는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탈 때는 오른 손에 일회용 장갑을 끼고 택시 문을 연다. 그리고 택시 문을 닫고 자리에 앉은 다음 장갑을 벗어서 택시문 틈에 놓고 내릴 때 다시 끼고 문을 연다. (택시문손잡이나 버스의 손잡이는 누구나 꼭 잡아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묻었을 가능성이 가장 놓은 곳이다.)
일회용 장갑은 오른쪽에만 낀다. 오른 손으로 외부의 것을 만지고 왼손으로는 내 물건을 만진다.
절대로 장갑낀 손으로 내 물건(가방, 마스크, 스마트폰 등)을 만지지 않는다.
5. 각종 페이를 현금, 카드보다는 스마트폰 페이, 온라인 페이로 바꾼다.
택시는 카카오택시를 이용해 자동 결제 방식을 선택하면 기사님과 서로 현금이나 카드를 주고 받을 필요가 없다. (사실 서울 택시는 대부분 승객이 카드로 직접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라 이건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지방은 이런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아 카드페이할 때도 기사님들에게 줘야해서 찝찝하다. 카카오 택시 자동결제가 제일 좋다.)
쇼핑은 가급적 온라인 쇼핑을 해서 직접 돈을 주거나 카드를 주고 받지 않도록 한다. 코로나 이후로 현금결제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가끔 현금을 주고 받을 때는 즉시 손을 씻는다. (휴대용 작은 손세정제를 들고 다니면 좋다.)
또 어쩔수 없이 현금거래를 할 경우 내 지갑에 오랫동안 있던 현금을 만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거스름 돈을 받는 것은 찝찝하다. 따라서 거스름돈 받지 않게 정확한 금액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가끔 편의점에 가서 카드로 사야하는 경우가 있는 이 때 내가 직접 카드기에 카드를 꽂는다.
가끔 슈퍼에 가면 카드 결제하고 전자펜으로 서명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난감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펜을 만졌을까? 사인하고 재빨리 손세정제로 닦아야 한다.
배달 음식 시킬 때는 카드로 선결제를 한다.
스마트폰과 신용 카드를 물휴지로 닦는다.
6. 집안 식구 외의 사람들이 내 물건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나도 식구 이외의 사람들의 물건을 만지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하면 어떤 경우에는 인정없는 사람으로 오해 받기 쉽다. 즉 산이나 절에 가서 가끔 사진 찍어 달라는 사람이들이 있는데 예전에는 잘 찍어 주었는데 이제는 타인의 스마트폰을 만지기 싫어서 거절한다.
7. 줌 미팅을 활성화 한다. 나가는 것이 무서워 집에만 있거나 혼자만 걸으면 고립감을 느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적 소통이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생존에 필수이다. 그래서 줌미팅을 하면 그런 고립감을 좀 해소할 수 있다. 얼굴을 보지않고 말하는 전화나 한 사람하고만 할 수 있는 영상 통화보다 여러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줌미팅이 좋다. 기나 긴 코로나 시국에서 지난 일년 동안 그나마 제 정신가지고 지내게 하는 데는 각종 줌미팅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명절, 제사도 줌으로 참석한다. 각종 강의나 종교 모임, 독서토론도 줌으로 한다. 이 시국에 크게 도움이 된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심지어 카페 비용이나 교통비도 들지 않아 좋다. 옷도 차려입지 않아도 되고 내가 샤워를 했는지 세수를 했는지 상대방이 알아차리기 힘들어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에게 정말 좋다. 머리만 잘 빗어 묶으면 된다.
8. 걷기 운동은 동네 공원, 아파트 단지나 거어서 갈 수 있는 뒷산에서 한다. 지난 일년 동안 동네 공원에만 갔기 때문에 아는 얼굴들이 많아졌다. 나처럼 매일 열심히 걷는 분들이 꽤 있다. 대부분 할머니들....우리나라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가 다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오후 2시 쯤 많은 사람들이 공원으로 쏟아져 들어 온다. 어디 살고 누군지 모르지만 낯 익은 얼굴들이나 옷차림이 많아졌다.
9. 외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밖에서 내가 만져야 하는 것들이 모두 코로나 감염자나 바이러스가 묻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감염자는 아니고 감염자일 확률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에서는 단 영점 몇 퍼센트의 가능성도 내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편집광처럼 생각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 사실 나 같은 백수는 좀 조심한다고 경제적으로 크게 손해보는 일 없다. 일회용 비닐 장갑 정도의 비용과 택시 비용이 드는데 그것도 굳이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병원 가는 일) 나가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 그저 매회 신경만 쓰면 된다.
" Only the Paranoid Survive - Andy Grove" 코로나 시국에 딱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처음 코로나가 터졌을 때는 무척 긴장을 하고 조심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것이 '일상'이 되어 나태해진다. 그러나 감염 위험도는 1년 전보다 지금이 더 높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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