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다가 막상 환자가 되면 환자는 몸도 괴롭지만 정신은 공황 상태가 된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시간이 지나서 당장 죽는 것은 아니고 쪼금 더 산다는 것으로 바뀌면 이번에는 자신의 '쓸모었음' 또는 '잉여인간'의 처지에 비관한다.
그러면서 삶의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은퇴하고 늙어가면서 20년 또는 30년 동안 겪을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환자들은 1년 이내에 다 겪는 것이다.
종교적, 철학적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럴때 삶을 지탱해 줄 수있는 것은 가치의 기대치를 많이 낮추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서 그 전의 나보다 훨씬 적은 일을 느리게 하고 감정적으로 휘둘리고 효율도 낮아진다.
나는 진단 받은 후 실비보험이 없어서 요양원에 가지 못했다. 힘들더라도 도움을 받으며 집에서 버티었다.
남자들은 환자가 되면 부인의 알뜰살뜰한 간호를 받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다른 집안 일은 제대로 못하지만 최소한 식구들에게 아침밥은 차려 주었다.
한 때 무지막지한 일정을 소화하던 내가 아침 하나 차리는 것이 하루의 큰 임무가 되었다.
그러나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쓸모있네.....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 전 나의 인생 목표는 확실했다.
작은 애가 수능보기 전까지 내 발로 화장실 가는 것이었다. 내 발로 화장실을 갈 수 있다면 집에 있을 수 있다.
작은 애가 대학에 간 후에는 목표 상실 때문에 약간의 좌절감을 느꼈다.
그러다 다시 목표 수정을 했다.
아이들이 돈을 벌을 때까지 생존하는 것으로 목표 수정했다.
잉여인간이란 생각은 자신의 건강했을 때의 기준으로 생각할 때 일어난다.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또 항암치료 휴지기나 표적치료제를 쓸 때에는 체력이 좀 좋다.
그 때는 봉사 활동도 하면 좋다. 대단한 봉사 활동이 아니라 간단한 봉사 정도. 자존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도 주의 사항이 있는데 '책임이 있는 자리'을 맡으면 안된다. 환자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는데 체력이 나빠졌는데도 책임감 때문에 무리하게 봉사를 하면 안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여러 사람이 봉사를 해서 내가 빠져도 크게 나머지 분들에게 해가 가지 않는 봉사가 좋다.
또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오래 버틴다는 것은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할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년 전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은 다르다.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조선시대에 태어난 조선인들은 태어날 때와 죽을 때의 사회가 별로 바뀌지 않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10년마다 새로운 나라이고 사회이다. 또 아프기 전에도 존재했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새로이 경험하는 것도 재미 있는 삶이다.
발병하기 전과 10년이 지난 지금 나의 경험은 정말로 많은 차이가 있다. 인류가 쌓아놓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삶의 방향성을 '소유'에서 '경험'으로 바꾸면 아직 나의 삶은 괜찮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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