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응급실에 가게된다.
나는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연세대병원의 응급실에 가 보았다.
본인이 다니는 병원의 응급실에 가는 것이 좋지만 어떨 때는 시간이 급해서 그냥 가까운 곳에 가기도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진짜 생명이 급할 수도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응급실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경우 응급실의 베드는 여유분이 없어서 힘들어서 갔는데도 오랫동안 의자에서 대기해야하는 경우가 많아 정말 너무 힘들다.
가장 힘들었던 경우가 패혈증 때문에 응급실에 갔던 2017년이다. 며칠 간 열이 올라(심한 열도 아니었다) 해열제를 먹었는데 열이 약을 먹을 때만 떨어지고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올랐다. 다른 기침이나 콧물 증상은 없었다.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응급실에 갈까말까하다가 삼성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베드도 여유분이 있고 한가했다. 의사는 일단 혈액검사 해보자고 했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다음날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나는 상태도 나쁘지 않아 일단 집에 갔다가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다시 오겠다고 하고 퇴원을 했다.
다음날 아침 패혈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고 빨리 병원에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 병실이 없어 일단 다시 응급실로 갔는데 맙소사! 한마디로 응급실이 꽉 차 있는 것이었다. 응급실 의자에서 거의 반나절을 대기하는데 그 때부터 체력이 떨어져서 똑바로 앉아 있을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남편이 암환자라고 호소를 했지만 알고보니 내가 대기하고 있던 방에 있는 응급환자는 모두 암환자였다!
전날 응급실이 한가했던 것은 정말 드문 경우였던 것이다. 응급실은 늘 분비는 것이 정상이란다. 응급실이 언제 한가할지는 거기서 일하시는 분도 모른다.
힘겹게 기다린 끝에 겨우 베드를 지정 받았는데 이번에는 병실에 자리가 나지 않아 응급실에서 2일 정도 있었다.
응급실은 암환자, 교통사고 환자, 남자, 여자 등 모든 종류의 환자가 함께 있게 된다. 커튼 하나로 모든 사생활을 가릴 뿐이다. 또 응급실이라 밥을 주지 않는다. 보호자가 알아서 지하 식당에 가서 밥을 사다 주어야 한다. 갑자기 응급실에 보호자 없이 오게 되어 밥을 먹지 못해 옆 베드 보호자가 사다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의자가 아니라 베드에 누워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나는 패혈증이라 항생제를 투여 받으며 당시 몸에 있던 케모포트를 제거하는 수술을 결정했다. 그것이 패혈증의 원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케모포트에 박테리아가 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약된 수술이 아니라 응급 수술이지만 또 그렇게 아주 '응급 수술'은 아니기에 수술을 위해 아침부터 굶으면서 대기했다. 예약된 수술 사이에 시간이 나면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패혈증 때문에 체력이 저하되고 수술 준비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느러져서 숨만 쉬고 있는 상태로 누워 있는데 근처 베드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두시간 마다 들렸다. 정말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는 신음소리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방광암 환자인데 암 때문에 오줌줄이 자주 막혀 2시간마다 다시 꽂아야 한단다.
배는 고프지, 체력은 바닥이지, 옆에서 신음소리는 들리지...... 생각해보니 어디서 봤던 광경이다. 주로 일제시대 배경 영화에서 일본 순사가 독립군을 고문할 때 쓰던 수법이다. 다른 사람의 고문 받는 소리를 들려주며 압박하는 방법이다.
그 상황이면 나는 모르는 것까지도 다 토해 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독립군은 못했겠다.......
또 암환자들은 다른 암환자의 고통에 쉽게 감정이입이 된다. 다음 순서는 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나는 폐암환자고 여자니 나중에 상태가 나빠져도 오줌줄 꽂을 때 그렇게 아프지 않을꺼야하고 스스로 안심시키는 자신을 발견했다.
레지던트샘이 와서 수술실(간단한 수술이라 처치실)로 데려 가는데 저 신음소리에서 벗어나고 조금 있으면 밥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었다. 응급실에서는 본능이 모든 것을 앞선다.
응급실은 '전장'이다.
또 늘 분비는 것이 정상이다. 의사가 집에 가지 말라고 하고 베드를 지정 받았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누워 있어야 한다.
온 몸으로 체험하며 또 하나를 배웠다.
또 나처럼 그저 응급실에 잠깐 있다가는 환자들보다 거기서 일하는 의료인들이 걱정되었다. 상황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환자들의 모든 고통에 공감하다가는 본인을 해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술로 해결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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