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시스템에 적응하는 법
처음 암진단을 받으면 환자들은 절망에 빠지고 보호자들은 황망함에 빠진다.
그리고 처음 당해보는 거대한 병원 시스템에서 헤매게 된다.
그래서 처음 가는 병원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게 되어 기운이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1. 일단 유명한 교수님을 인터넷에서 찾아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한다.
그런데 유명한 교수님은 예약이 너무 밀려 너무 늦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잘 선택해야 한다.
2. 예약 후 병원 가면 '처음 오신 분' 코너가 있다. 최초 방문 때는 일단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
진단 받고 초창기에는 간호사샘이 하는 말은 전부 다 받아 적는다. 예약 내용, 검사 내용, 다음에 갈 곳(이름도 생소하다) 등 모두 생소한 정보를 주는데 들을 때는 기억할 것 같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종양내과 샘이 하는 말도 적으면 좋다. 그러나 종양내과 샘의 설명은 의무기록지를 복사하면 나오지만 간호사샘의 말은 흘러 가면 그만이고 바쁜 샘에게 재차 묻는 것도 민폐이다.
진단 받고는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자신의 총명함을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또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하는 것이 좋다.
3. 처음 재진으로 간 경우(즉, 두번째 방문)가 제일 힘들다.
병원에 따라 미리 진료비를 결제해야 하는 곳도 있고 후불제인 경우도 있다. 기껀 기다렸더니 결제하고 오라고 해서 다시 돌아간 적도 있다. 이걸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신용 카드를 등록해서 자동 결제가 되는 시스템이 되는 병원도 있다. 이 경우 수납 때문에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말 편하다.
재진으로 갔을 경우 과마다 앞에 있는 무인기에서 '왔다고' 진료 신청을 하고 기계에서 나오는 종이를 받아서 담당 간호사에게 주어야만 진료 신청이 끝나는 병원도 있다. 즉 '진료 예약 했으니' 하고 마냥 기다리다가는 진료 받지 못한다.
어떤 병원은 지난 번 진료에서 준 예약증을 담당 간호사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병원마다 시스템이 다르니 처음에는 물어 보는 것이 좋다.
4. 보통 종양내과에서는 예약한 시간에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면 진료실에 들어 가서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가서 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간호사가 나와서 다음 예약증과 다음에 갈 곳(검사실, 약 투여실)을 표시한 지시서를 준다. 이 때도 많이 기다린다. 환자가 진료실을 나간 상태에서 선생님이 처방전이나 다음 진료지시서를 쓰는데 선생님의 속도라기 보다는 병원 시스템이 이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 것 같다.
6. 진료 후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간호사가 준 지시서를 받아서 검사를 하거나 약투여를 하러 가거나 다음 번 CT 예약 하러 간다.
거기 가면 또 대기(수납대기, 항암대기, 검사 대기 등등)를 하게 된다. 대학병원에서의 진료는 시간의 90%는 기다리는 시간이다. 원래 그런 것이니 이 기다리는 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내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를 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 화를 내면 나만 손해다.
6. 종양내과 진료대기 시간:
내가 오랫동안 종양내과를 다녔는데 예약 시간에 바로 진료를 받은 경우는 한 번정도 였다. 재수 좋은 날....
그리고 어느 때인가는 택시 타고 가는데 전화가 왔다. 오늘 진료시간이 빨리 진행되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10년이 넘는 동안 딱 한번이었다.
대부분은 기본으로 50분-1시간 정도 기다린다. 여러 병원을 다녀 봤지만 다 마찬가지였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이럴거면 왜 예약을 받냐'고 짜증을 내는 남자 환자도 더러 있지만 예약을 한산하게 받으면 나의 예약 날짜가 뒤로 밀린다는 것을 명심하자. 예약 날짜 그나마 빨리 받았다는데 감사해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마음을 느긋하게 갖는 것이 좋다. 물론 그 한시간이 편한 시간은 아니다. 지난 3개월의 나의 활동을 되돌아 보며 속죄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무얼 잘못먹었나, 운동을 덜했나. 컨디션이 나빴나. 하면서 재발이 없기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유난히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누군가가 상태가 나빠져서 상담을 오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양내과 선생님과는 1시간 기다려서 1분 진료하고 처방전 받아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재발이 없어서 3개월 전과 같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선생님께 말했다. 저의 소원은 선생님과 일년에 네 번, 짧게 만나는 것이라고.....
1시간 기다려서 선생님과 1분 상담하고 수납에 가서 또 한 30-40분 기다려야 한다. 삼성병원은 카드 등록을 해서 자동 결제가 되지만 CT예약을 잡으려면 대면 수납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기다리는 시간은 '깨운한 시간'이다. 또 3개월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1시간 기다릴 것을 미리 생각하고 예약 시간보다 일부러 늦게 가면 오히려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고 밀리기도 하니 딱 제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 반면에 시간이 남았다고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7. 처음 진단 받았을 때는 진료가 끝나고 수납하고 의무기록지를 꼭 복사해서 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다보면 암병동의 시스템은 마치 모두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연'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서는 의사 한명 당 진료하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다(요즘 말로 의사, 간호사의 정신과 신체를 갈아서 우리나라 진료수가가 낮은 것이다). 진료시간 내에 그 많은 환자를 다 감당하기 위해 의사는 의사대로,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쓸데없는 행동 없이 잘 짜여진 행동 패턴을 보이며 오래 다니던 환자조차 그 흐름에 적응해서 효율성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 (노련한 암병동 간호사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는 일인 악단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 오는 환자들이 가끔 그 흐름을 깨뜨리지만 금방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삼성 병원의 내 담당의는 진료실을 두 개 쓴다. 저쪽 방에서 진료하는 동안 이 쪽 방에 환자가 미리 들어가서 기다리고 간호사는 미리 그 환자의 정보를 컴퓨터에 띄워 놓는다. 의사가 컴퓨터를 클릭해서 정보를 찾거나 환자들이 들어 오거나 나갈 때 기다리는 시간(암 환자들은 천천히 움직인다.)을 없앤 것이다. 의사는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이 방 저 방을 뛰어 다니며 진료를 한다.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그나마 운동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효율의 대기업이다.
* 의사선생님과 상담하는 법
1. 의사선생님과 상담하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진행 정도, 가능한 약, 방사선 치료를 인터넷 카페에 가서 물어 보거나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개개인의 차이가 있지만 예상은 할 수 있다.
대부분 큰 병원의 진료시간은 1시간 기다려 1,2분 선생님 얼굴을 보게 된다.
그 짧은 시간을 울거나 엉뚱한 말로 보내서는 안된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면 실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미리 공부하고 궁금한 것은 종이에 써 가야 한다.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고 가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다 까먹고 그냥 나온다.
다시 질문하려면 다음 진료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암 진단을 받고 나는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지만 의사들에게 나는 수 백명의 환자들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들이 내가 오기 전에 내 차트를 보고 미리 공부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방사선과, 병리학과에서 올라 온 자료를 보고 내 인생의 최종적인 중요한 결정을 한다. 단 몇 분 만에.......
보통 대형 병원은 진단이 끝나면 담당의를 배정하고 진료일을 정해 준다.
유전자 검사를 하고 보통 열흘에서 2주 정도 기다리는데 이 때 본인 암에 대한 유전자 변이 종류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다. 또 세포독성항암제와 표적치료제의 차이 정도는 이해하고 가는 것이 좋다.
즉 일단 폐암이라고 진단 받고 유전자 검사 기다리는 동안 대략적인 폐암 유전자 변이 종류를 알고 가면 그에 따른 처방을 예상할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가면 의사가 뭐라 약 이름을 대는데 기억하기 힘들다. 약이름이 흔하지 않고 기억하기 힘든 이름이라 한번 들어서는 기억하기 힘들다. 미리 조사를 하고 가면 의사 지시 대로 따라 하는데 심리적으로 편하다.
또 극단적으로 유전자 검사해서 표적 치료제 쓰는 줄 알고 갔는데 유전자검사에 해당 유전자변이가 없어서 그날세포 독성항암치료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환자가 마음의 준비할 시간이 없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다. 또 치료 받고 나서도 신체적으로 힘들다.
2. 처음 진단 받고는 의사선생님을 면담하기 전 감정을 정리하고 면담하는 것이 좋다.
종양학과 의사의 임무는 환자의 감정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 주는 사람이다.
환자가 감정적으로 힘들어 하면 감정을 추수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의사와 면담하는 시간을 그런 식으로 허비해서는 안된다.
또 환자가 감정적으로 심하게 힘들리면 의사가 위로하느라 자신의 원래 임무를 놓칠 수도 있다.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도담아 주는 것이 이상적인 진료이겠지만 한국적 의료상황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시간을 주고 감정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것이 내게 이익이 된다.
그들이 가장 이성적인 방법으로 내 인생의 가장 큰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끔 의사들이 나를 퉁명스럽게 대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의사 성격이겠거니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아마도 '방법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두번째 확산이 오고나서 생검을 했었는데 의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대했다. 변이를 찾아서 약을 쓸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 의사가 그렇게 웃을 줄 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의사들도 자신이 해 줄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스트레스 받겠지....
3. 그리고 종합병원의 의사는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만 해 준다.
즉 약처방, 수술, 방사선 치료 등이다. 의사에게 전반적인 투병 생활을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 생활 패턴, 운동, 조심해야 할 음식 등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세포 독성 항암제는 일종의 '너죽고 나죽자'식 약이다. 환자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을 주는 약이다. 그런데 왜 의사들을 그것을 환자들에게 투여할까? 그것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고 그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세포독성 항암제의 효과와 부작용은 개인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러나 경력이 많은 의사들을 아마도 직감적으로 각 환자들의 항암제 효과를 미리 알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미리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플라세보 효과를 노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항암제의 효과를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은 환자들의 몫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해서 오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슬기로운 투병 생활에 대해서는 일단 종합병원에서 주최하는 항암교실 강의를 들으면 좋다.
그러나 환자들을 많이 본 의료진의 입장에서 말하는 충고보다는 항암투병을 해 본 사람들의 말이 더 절실하게 들어 오기도 한다. 요즘에는 정보 과잉 시대라 인터넷, 유튜브에 많이 있다.
사실 투병하다보면 전반적인 생활관리가 큰 비율을 차지하는데 병원에서 이것을 본격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환자마다 개인차가 매우 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보험 수가책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보통 이것을 투병 카페나 요양원, 책에서 해결한다.
5. 가끔 60, 70대 이상 환자들 중 평생을 자신의 환경에서 '갑'으로 살아온 남자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가 '을'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병원에서 환자는 '절대 을'이다. 병원에 대해서, 선생님에 대해서, 간호사샘에 대해서 불만이 있어도 큰소리 내며 화를 내는 것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사실 가장 큰 불만은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고 의료진들은 나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신을 특별히 취급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내가 누구인데.'라는 생각을 버리고 의사샘이나 간호사샘의 눈에는 다 똑 같은 환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사람을 보지 않고 환자 안에 있는 암세포만 보기 때문이다. 그 분들은 환자들을 암세포 종류와 기수별로 구분할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의사에게 갑질하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버렸다.
'누구의 소개'로 왔는데, 이것도 다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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