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으면, 특히 4기 진단을 받으면 '나의 세계'가 말그대로 무너진다.
특히 대부분의 4기 환자는 절대로 암진단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기적적으로 나았더라도 평생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암진단을 받으면 갑자기 그간의 나의 모든 고민이 하찮아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고민에 코웃음을 치게 된다.
'그래도 너희는 앞으로 살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 온다.
심지어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부럽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저 나이 되도록 폐지가 든 수레를 끌 정도로 힘이 남아있다는 것에 존경심마저 들고 부럽다. 나는 내 몸하나 끌고 다니기도 벅차고 그들의 나이가 될 때까지 살지 못한다.
그리고 항암요법을 시작하면 내가 그동안 욕심 많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고, 몸에 통증이 없어야 하고, 마음대로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하는 것도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내 얼굴에 기미만 껴도 신경질이 났었는데 이제는 발겋게 일어난 피부를 하고도 잘 나갈 수 있게 된다.
예쁜 옷? 다 필요없다. 투병 생활하기 좋게 목이 가리워지고 땀나도 빨리 마르고 따뜻한 옷이 최고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미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미각이란 결국에는 내가 음식을 입에 넣고 삼킬 때까지 몇 초 동안 감각인데 그 감각 때문에 내 생명을 좌우할 중요한 음식을 먹지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항암 치료를 하면 미각이 변한다. 나는 한 동안 짠맛을 통증으로 느꼈다. 그래서 매운 맛은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소금이 들어가면 아파서 먹기 힘들었다.
나의 입맛은 고유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항암 몇번에 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미각은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다음 부터는 그냥 먹는다. 미각이 나의 영양소 섭취를 방해하지 않도록 무시하고 먹기로 했다.
예전에 어떤 환자가 그랬다. 이미 많이 내려 놓은 것 같은데 아직도 더 내려 놓아야 할 것 같다고....
투병 생활은 나의 모든 욕심을 서서히 내려 놓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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