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 일어나는 생각들

올림픽 출전 선수처럼 투병하기

stayalive1 2020. 3. 21. 20:27

나는 발병하기 전에도 데이타와 기록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었다.

투병생활하면서 해야할 일과 먹어야 하는 것들의 목록을 짜고 실천하도록 노력했다.

매일 스트레칭하고 걷고 맛사지하고. 기록하고.

남편은 나보고 올림픽 나가는 선수같다고 놀렸다.


그렇다. 투병 생활은 올림픽 나가는 선수처럼 자신의 육체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이 나기 전에 나의 육체는 그저 내게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기 위한 도구였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아프지 말아야 하고 집안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에 나가 일하기 위해 건강해야 했다.

그러나 암이 생기면 이 지구 위에 조금이나마 더 존재하기 위해 나는 내 몸을 떠 받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체육선수들 만큼 자신의 신체를 떠 받드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은 자신의 종목과 기초 훈련을 하고 맛사지를 한다. 또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신경을 쓴다. 양궁선수들의 담력 키우기는 유명하다. 또 과학적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측정하고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암환자는 그런 식으로 몸을 가꾸고 몸이 건강하기 위해 정신까지 신경써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예전에 올림픽 시즌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 우리나라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뽑힌 것을 보았다.

처음 든 생각은 '누구 놀리니?'하는 생각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장미란 선수가 아름다운 몸매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올림픽 역도 중계를 보고 그 기사가 맞다는 데 동의했다. 즉 장미란은 역도라는 특정 종목에 가장 최적화된 몸매였던 것이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드에 맞는 몸매를 가졌고 이상화가 스피드 스케이트에 맞는 몸매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 이다.

암환자도 마찬가지로 항암치료에 맞는 몸매와 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이어질 항암을 잘 견디도록 체중도 너무 마르지 않게 유지하고 체력도 유지하여야 하는 것이다. 각 대학 병원마다 강한 항암을 잘 이기는 환자의 기록이 있는데 (평균 열번 밖에 못하는 항암을 24번까지 했다는 등등) 이 분들을 보면 긍정적이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잘 먹는 분들이다.

의사가 내게 맞는 약을 찾아 줄 때까지 버티려면 항암에 맞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암 환자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가 '습관 고치기' 등인데  이 말은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에 태도나 상황은 그대로 나둔채 '나쁜 습관'만  고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암 1,2,3,기 환자에게는 그것이 해당될 지 모르지만 암4기 환자는 '습관 고치기'가 아니라 아예 딴 삶을 살아야 한다.

올림픽 출전 선수는 거의 24시간 올림픽 출전을 위해서 산다.

 진단 받는 순간 과거의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치료 효과도 있고 심리적 갈등도 줄일 수 있다.

굉장히 모험적인 두번째 삶이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과거의 영광(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던)'을 잊고 새로운 삶에 힘들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구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에 나가기 전에 이미 금메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선수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암환자도 마찬가지다.


가끔 투병 생활에 좌절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 '너는 살기 위해 어디까지 할수 있니?"라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은 단지 경제적인 질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올림픽 출전 선수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올바른 투병생활'은 뻔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기약없이 실천하는 것이다.

기약없는 '선수생활'은 환자들을 지치게 한다. 

너는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수 있니?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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