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투병생활

항암 치료는 과잉 진료가 좋다

stayalive1 2020. 5. 29. 08:44

나는 2012년에 폐선암 4기(임파선과 뇌전이)를 서울 삼성병원에서 진단 받았다.

다른 병원은 어떤 형식인지 모르지만 그 병원은 2박3일 입원하면서 진단을 위한 모든 검사를 한다.

X-ray, CT, Pet-ct,  생검, 혈액검사등. 생검에서 폐암이 확정되고 뇌전이가 있다고 나오자 하루 입원을 더해서 바로 감마 나이프 치료까지 하고 퇴원을 했다. 정말 건강한 몸으로 입원했는데 나흘 뒤 퇴원할 때는 반 쯤 죽은 듯한 상태(심리적으로)로 퇴원했다. 

삼성 병원에 간 이유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까지 병원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중요한 병이니 그래도 삼성 병원보다는 서울대 병원이 좋겠지 하는 생각에 유전자 검사가 끝나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서울대 병원의 혈액종양내과로 배정 받았는데 감마 나이프치료를 받았다고 하니 선생님은 그 정도의 크기에서는 굳이 감마 나이프 필요없고 약으로도 조절이 된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진료 후 삼성병원이 과잉 진료를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과정이 힘들었던 감마나이프이기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했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당시 먹고 있던 표적 치료제인 이레사는 뇌막을 통과해서 뇌에 있는 종양을 줄이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에 나처럼 뇌에 종양이 있는데 작다고 그냥 표적치료제로만 조절하다가 내성이 와서 그 다음에는 손을 쓸 수 없이 커져 버린 환자들을 몇 분 만났다. 너무 커져 버리면 감마 나이프도 힘들다.

그 이후로 나는 진단 시 바로 감마나이프 치료를 해 준 삼성 병원이 너무 고마웠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나의 투병 기간 동안 중요한 의사 결정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당시 감마나이프 치료는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는 표적 치료제에 대한 지식이 많이 누적되어 있지 않아 서울대 병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지금은 여러 곡절 끝에 다시 삼성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당시 서울대선생님은 나의 체력 유지에 특별히 신경을 써 주었고 비록 실패했지만 임상시험에도 넣어 주려고 노력했었다. (T790M이 검출되지 않았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그 분으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투병 중 여러 의사들을 만나다 보면 외과 선생님은 수술이 최고고 방사선과 선생님은 방사선 치료가 최고고 혈액종양학과 선생님은 약이 최고라는 생각이 머리에 꽉 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산병원에는 협진과(종양내과, 외과, 방사선과샘이 함께 모여 진료한다.)가 있지만 서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하긴 뇌까지 전이된 폐암 4기 정도면 그 누구도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보다는 잘 아는 영역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확실한 견해를 가진 '확신범(?)'들이다. 하긴 환자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하는데 그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고는 힘들 것 같다.

 

또 혈액종양내과샘들은 한 분이 폐암, 췌장암, 유방암등 여러 암을 다 커버하고 있다. 물론 자신들만의 특기가 있겠지만 '섞어 진료'를 한다. 요즘처럼 표적 치료제나 면역항암제가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는 시점에서 여러 암을 다 커버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4기 환자는 결국 방사선 치료와 약 뿐인데 방사선 기계도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종양내과의사선생님들은 자신의 병원에 없는 방사선기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최신 방사선 치료를 시도할 것인가는 환자가 결정해야 한다. 어느 병원의 무슨 기계가 무슨 장점이 있는지는 결국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

최신 방사선 기계도 있고 유명하신 혈액종양내과 선생님도 있는 산 좋고 물 좋은 병원은 없는 것 같다.

각 병원은 나름대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병원은 없다.

또한 각 병원들은 '최신 기계를 도입했다.'고 광고를 크게 하지만 최신 기계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의사들의 경험과 스킬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환자를 대하기 전에 먼저 공부를 하겠지만 결국의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기계를 도입한지 2년 정도는 지나야 경험이 쌓이는 것 같다. 

 

또 항암제를 쓰다보면 CT 상에서 종양이 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다.  그러나 CT에 보일 정도의 크기가 되려면 암세포 수 억개가 모여야 한다. CT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4기 환자들은 완전히 없어질 가능성이 정말 낮다. 

그런데 환자들은 일단 CT 상에서 다 없어지면 다 나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계속 항암치료를 한다.  사람의 마음이 화장실에 들어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듯이 처음에 약을 써서 조금만 효과가 있어도 다행이다라고 행복해 하는데 CT 상에서 보이지도 않는데 항암을 계속하면 짜증이 난다. 그래서 언제 끝나냐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이제 더 이상 지겨워서 못하겠다고 항암 끊었다가 엄청나게 전이가 폭발적으로 일어난 경우를 경험했다.

이제는 과잉 진료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의사가 시키는데로 다 한다.  약 먹으라고 하면 약 먹고 검사하라면 검사한다. 나는 그저 항암제를 버티기 위해 체력을 유지하는데만 신경을 쓴다.

 

또 나는 두번의 확산을 경험하였는데 두 번다 2월 검사에서 발견하였다. 전 해 11월 검사에서는 괜찮았는데 3개월 지나 2월에 확산이 온 것이다. 하필이면 그 때 다 잠시 약을 끊었을 때 였다.  여름에 약을 잠시 멈춘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괜찮았다. 

또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처럼 봄에 확산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겨울만 되면 초 긴장 상태가 된다. 나름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 기간에는 약을 끊지 말고 무슨 약이라도 투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