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제정신 유지하기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화, 분노, 좌절, 초조감)

stayalive1 2021. 11. 13. 12:47

환자들은 잘 지내다가도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휩싸인다. 특히 정기 검진하기 일주일부터 초조해진다.

나 같은 4기 환자들은 '3개월 인생'이다. 3개월마다 CT를 찍어 상태를 체크해서 괜찮으면 또 3개월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검진 시기가 다가오면 초조해지고 화가 쉽게 난다.

 사실 그 상황에서 내가 화를 내거나 초초해해도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저 나의 감정 소모일 뿐이다. 

결국 내게 주어진 시간을 불행하게 쓰는것 뿐이다.

 

 나의 종교인 불교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보통 업이라고 한다.)을 태우기 위해 엄청난 육체 노동(절)과 염불 기도를 권한다. 절과 기도를 열심히 해서 내 소망이 100% 이루어진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사실 바라지도 않는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태우고 진정하는데는 정말 효과가 있다. 절에서는 매년 수능을 위해 학업 성취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열심히 하면 물론 성적이 좋아지고 원하는 곳에 합격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엄마가 아이의 결과물에 대해서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정적으로 흔들이지 않는 데에 도움을 준다. (내가 이 결과를 순조롭게 받아들이도록 해주세요.)

 

 나도 가끔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리면 염불을 한다. 절에 가서 하면 좋겠지만 요즘에는 그냥 스마트폰 앱을 틀고 눈 감으면 스님들이 기도를 같이 해주는 것 같아 좋다. 예전에는 백팔배도  했었지만 지금은 발가락 염증 때문에 힘들다. 절하면서 일어날 때 생각보다 엄지 발가락에 힘이 많이 간다. 상처를 건드린다.

 

 예전에 그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부인이 아이들과 장애를 가진 남편을 홀로 돌보았는데 호킹 박사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 힘든 시절을 그 부인은 교회의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염불이나 노래나 다 입으로 업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노래를 잘 부른다면 노래를 자주 부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나처럼 음치인 사람은 방에서 혼자 부르는 것도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서 노래는 그냥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냥 염불하거나 책을 소리내서 읽는다. 좋아하는 책을 소리내서 읽는 것도 효과가 있다.  다 늦게 영어 공부하겠다고 쉬운 영어책을 읽고 있다. 소리내서 책을 읽을 때는 내게 익숙한 문자인 한글보다는 영어가 집중하기 좋다. 아주 감정이 좋지 않을 때 한글을 읽을 때는 블럭으로 문장을 인지하여 읽는 와중에 그 짧은 시간에도 나쁜 감정이 끼여든다. 익숙치 않은 영어 문장를 읽을 때는 한 단어 한단어에 집중하기 때문에 글을 소리내어 읽는 동안에는 나쁜 감정이 끼여들 시간이 없다. 

 예전에 법륜스님도 어르신들에게 젊은이들한테 잔소리하지 말고 말하고 싶으면 염불이나 하라고 충고를 했다. 가끔 어르신들의 잔소리는 진정 어린 충고라기 보다는 그저 '말하고 싶은데 할 말이 잔소리 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적 의식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효과(기도성취)를 반드시 이룬다는 보장은 없지만 흔들리는 감정을 다스리는데는 정말 효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들이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인 것 같다. 

 

  절을 하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인데 절 외에도 우리나라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하고 있다. 각종 스포츠와 등산이다. 산에 다녀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당연히 좋은 공기를 마신 이유도 있지만 몸을 지속적으로 리듬미컬하게 움직였다는 이유도 클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등산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스님들은 산에 계신 분들도 많고 절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하체 근육이 매우 발달해서 산을 정말 빨리 타신다. 정말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 같다.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는 높은 산에 있을 수록 성지인데 (대표적인 곳이 설악산 봉정암, 관악산 연주암), 21세기에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두발로 따박따박 걸어서 올라 가야 한다.  그곳에 다녀 오면, 강제로 운동 시키려고 성지를 이곳에 만들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발 한발 딛고 성지에 가서는 복전암에 보시를 한다. 이 성지가 없었다면 나는 그곳에 올 엄두도, 계획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두 발로 오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하고 보시를 한다. 

예전에 오대산 적멸보궁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내 몸 이끌고 올라가기도 힘들어서 짐도 거의 들지 않고 쉬엄쉬엄 가고 있는데 할머니들이 불전에 올린다고 공양물을 잔뜩 넣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3개월 이상의 시간을 예견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그 분들의 기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연세에 저 배낭을 이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경우에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때도 있다. 그저 부정적인 감정을 내가 즐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은 나의 건강이나 가족들에게 해를 줄 뿐이다. 암환자는 자신의 신체에 노예이기 때문에 내 몸을 위해서라도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100%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남아 있는 생이 몇 달 남지 않아도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을 보았다. 내가 불행하던지 행복하던지 상관없이 끝이 오기 때문에 그 시간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는 분들을 보았다. 그들은 이루어야 할 욕심도 분노해야 할 대상도 이미 내려 놓았기 때문에 평화만이 있었다. 내가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아직도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나의 화가 시동을 걸고 있구나하는 것을 인지하는 수준까지 왔다.  내가 타인에게 화를 내는 것의 원인의 90% 이상은 나에게 있다. 나를 화를 나게 만든 사람이나 상황은 그저 마지막 10%를 트리거 했을 뿐이다.  울고 싶은데 때린 격이다. 화는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줄 뿐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화'나 분노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싶으면 틱낫한 스님의 책인 '화'를 권한다. 자신의 화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